지난 2일 경기도 포천 일동유치원 2층 맑은샘물반 교실. 만 4세 어린이 14명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뭔가를 하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블록을 쌓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퍼즐을 맞추거나 종이접기에 한창인 친구도 있다. 왁자지껄한 어린이들 사이를 우태안(51) 담임교사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쏟아지는 질문과 자랑을 일일이 받아준다.
기자가 지켜본 교육시간은 ‘자유선택활동’이었다. 자유선택활동은 아이들이 교사가 제시한 주제에 따라 언어와 음률, 수·조작, 미술, 과학, 역할, 쌓기, 컴퓨터, 접기, 블록 등 10개 영역 중 하나를 선택해 혼자 또는 어울려 노는 시간이다.
우 교사는 “개인적으로 자유선택활동이 누리과정이 제시한 교육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왜일까. 누리과정은 기존 유치원과 어린이집 따로 있었던 유아 교육·보육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즉 만 3∼5세 공통교육과정을 말한다. ‘초등 입학 전 3∼5세 영유아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해야 할 최소한의 교육내용’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할 영역이 있다. 누리과정의 경우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등 5개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우 교사는 “아이들이 블록을 하다 보면 의사소통(의견 나누기)과 사회관계(설득하기), 예술경험(꾸미기), 자연탐구(쌓기), 신체운동(옮기기) 모든 게 가능하다”며 “유아·놀이·융합 중심의 교육과정이 바로 누리과정 도입 취지”라고 설명했다. 일동유치원의 교육 원칙이나 방향도 자유선택활동과 비슷하다. 원내 모든 교육이나 활동은 되도록 원아 스스로 꿈을 키우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하려 한다고 엄미선 원장은 강조했다. 유아기는 인지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또는 사회적으로든 발달하고 있는 단계인데다 아이마다 그 수준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누리과정이 현장에서 유아·놀이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임부연 부산대 교수(유아교육학)는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누리과정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누리과정은 지식과 기술, 태도 등 누리과정 총론과 각론, 교사지침서 등에 제시된 일부 용어와 지나치게 세부적인 목표 및 내용, 평가 항목 때문에 마치 초등학교 준비와 지식습득 위주의 교육과정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iframe width="300" height="250" align="left" src="http://ad2.segye.com/RealMedia/ads/adstream_sx.ads/segye.com/view2@x50"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noresize="" scrolling="no" style="padding-right: 10px"></iframe>현장 교사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선생님 활동 끝났어요. 이제 놀아도 돼요?” 경기도 고양 한산초등학교병설유치원의 신영진 교사는 예전 아이들로부터 곧잘 들었던 이 말을 지금도 머리에 단단히 새기고 있다. 신 교사는 “나는 그래도 놀이중심의 교육이라고 판단해 짰던 교수안인데,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키니까’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인 유아교육은 교사 위주와 목표 중심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아이를 여유 있게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것”이라며 “아이들을 이해하면서 그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유치원교사의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교육부는 초등학교 1, 2학년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교과목과 유아 발달단계에 부적합한 내용은 방과후 과정에서도 제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교육부의 ‘유아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일주일간 원아 1인당 참여하는 방과후시간 특성화프로그램은 공립이 3.05개, 사립이 3.09개이다. 대부분은 한글이나 영어, 과학 등 초등학교 교과목 선행학습과 관련돼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방과후 지식 위주 수업이 유아기에는 효과가 크지 않고 오히려 아이의 정상적인 인지·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 스트레스에 노출된 어린이는 신경 연결 장애로 이후 학교와 직장에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게 뇌과학계 통설이다. 취학 전 자신의 역량을 뛰어넘는 방과후 교과 수업을 받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어린이는 이후 성장과 발달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무분별한 영어와 한글 등 특성화프로그램 위주의 방과후 과정을 개선하고 놀이·돌봄 중심의 ‘방과후 놀이유치원을 올해 10개원을 시작으로 2022년엔 50개원까지 확충한다. 또 유아교육과 유치원 운영 등에 있어 학부모·교원·유아 등 교육공동체가 함께 하는 혁신유치원(2017년 33개원)을 4년 뒤 130개원 이상 늘릴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 개편과 유아 중심의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유아가 중심이 되는 혁신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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