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도입으로 우후죽순
저출산ㆍ직장어린이집 증가 따라
2014년 이후 감소폭 매년 커져
작년에도 34만명 공급 초과
내년까지 5000개 폐원 전망
서울 구로구에서 지난 8년 간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A(42)씨는 지난달 어린이집 문을 닫았다. 30명이 넘던 원아가 2013년부터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에는 17명으로 줄었기 때문. 급기야 남편 월급으로 교사 인건비를 해결했지만 얼마 전 인근에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과 국공립 어린이집이 들어서자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여 폐원을 결정했다. A씨 어린이집과 500m 거리에 있던 민간 어린이집 역시 비슷한 이유로 두 달 전 문을 닫았다. 2008년 가정어린이집으로 보육사업을 시작한 A씨가 민간어린이집으로 규모를 키운 것은 2011년. 다음해 0~2세 무상보육 시행을 앞두고 보육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A씨는 “하지만 이후 가정양육수당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증가로 민간 어린이집은 생존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문을 닫는 민간 어린이집들이 급증하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어린이집 수는 4만2,517개로 전년(4만3,742개)보다 1,225개나 감소했다. 전체 어린이집 수는 새로 개원한 어린이집까지 포함된 것으로, 최소 1,225개가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어린이집 숫자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6년 이후 계속 증가하다가 2014년 처음으로 28개가 줄어들었고, 지난해에는 감소폭이 1,225개로 급증했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폐원한 어린이 집 수는 1,119개로 2012년(429개)의 3배에 육박했다.
이런 현상은 2012년 0~2세 무상보육 도입으로 어린이집이 과잉 공급됐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수요가 급증하자 정부는 어린이집 인가 제한을 완화했고, 2013년 어린이집은 사상 최고치인 4만3,770개까지 늘었다. 하지만 같은 해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10만~20만원을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이 도입되고, 국공립ㆍ직장어린이집이 증가하면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저출산으로 영유아 수가 줄어들고, 해마다 반복되는 누리과정 예산 파행으로 유치원을 보내려는 부모가 늘어난 것도 영세한 민간ㆍ가정 어린이집에 직격탄이 됐다. 실제로 2014년 폐원한 어린이집의 91%(1,048개)는 민간ㆍ가정 어린이집이다.
이 같은 폐원 추세는 올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가정어린이집 정원은 20명이지만, 등록원아가 12명 미만인 경우가 절반에 가까울 정도”라며 “현재 3만5,000개인 민간ㆍ가정 어린이집 중 내년까지 5,000개 정도가 폐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전체 어린이집의 정원은 179만명이지만 실제 원아는 145만명으로, 정원보다 34만명이나 부족했다.
민간어린이집 폐원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과 대책은 엇갈린다. 지성애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부모들이 질이 낮아 선택하지 않는 어린이집이 폐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이를 통해 전체 보육의 질이 향상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반면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보육은 시장 논리에 따르기보다는 정부가 적절히 질 관리를 하는 공공사업의 성격이 강하다”며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취약지의 민간ㆍ가정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보육정책과 관계자는 “인구 감소와 부모의 선택에 의해 어린이집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검토한 바 없으며, 사회적인 합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